마이너스 금리의 명암
2019년12월 - 3 분 읽기마이너스 금리는 이론적으로 성립하지 않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이너스 금리로 사이클을 연장할 순 있지만, 너무 오래 지속될 경우 관련 리스크는 증가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 적 수학 선생님이 칠판에 그려진 수직선을 왼쪽으로 연장하며 음수를 하나씩 써 내려갈 때 교실 안에 흘렀던 정적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양수랑 똑같다!”, “단지 음수일 뿐”이라는 선생님의 설명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두 개의 양의 사과를 두 개의 음의 사과와 합칠 경우 아무런 사과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한참이나 걸린 것이죠.
시장금리가 x 축 아래로 떨어지는 차트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세상이 끝난 것일까요? 아니면 마이너스 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이례적인 정책대응이 초래한 의도치 않은 한시적인 결과일 뿐일까요? 실질적인 영향을 넘어 돈의 가치가 미래보다 현재가 높다는 정설에 기반한 금융 이론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세상의 종말에 베팅하는 전략이 적중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다행히 경제지표 또한 글로벌 경제의 붕괴가 아닌 둔화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실업률은 여전히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위험자산의 랠리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 금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글로벌 중앙은행 정책금리

출처: Bloomberg. 2019년 11월 14일 기준.
BLOOMBERG BARCLAYS GLOBAL AGGREGATE 마이너스 금리 채권 (십억 달러)

출처: Bloomberg. 2019년 11월 13일 기준.
마이너스 금리는 중앙은행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수단이 제한되면서 야기된 심각한 왜곡 현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통화정책은 특히 재정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그 효과가 약화되고 있지만,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제로에서 멈췄더라면 경기회복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을 것입니다. 지난 2012년 덴마크가 처음으로 금리를 마이너스대로 인하한 이후 스웨덴, 스위스, 일본 그리고 유로존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습니다.
어찌 보면 마이너스 금리라는 이 비정상적인 금융현상은 추세적 요인으로 인해 수익률이 저하되고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 세계에서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출생률 하락과 고령화로 인해 노동인구 증가율이 둔화하고 있습니다. 낮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세계화와 생산비용 절감을 야기하는 신기술 때문입니다.
이러한 추세적 흐름은 지난 2008년 시장 폭락 이후 전세계 중앙은행이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했을 때부터 이미 본격화됐습니다. 이로 인해 금융 위기 발생 이전에 이미 형성되었던 과잉저축이 더욱 심화되면서 투자 기회 대비 자본 공급이 크게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는 결국 낮은 실질균형금리와 역대 가장 더딘 경제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짜로 빌려주는 돈마저 충분한 대출 수요를 자극하지 못한다면 다음 단계는 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한 일종의 수수료를 부과함으로써 대출기관들의 자금 보유 비용을 높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수익성 낮은 사업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줄어드는 예금보다는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입니다.
마이너스 금리가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요? 독일 바이에른에서 현지 통화를 쓰지 않으면 가치가 서서히 하락하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마이너스 금리는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실제로 비은행 채널에 유동성이 강화됐으며, 유럽중앙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초기 연구에 따르면, 아직 최종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나 대출 공급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됩니다.
"세상의 종말에 베팅하는 전략이 적중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다행히 경제지표도 글로벌 경제의 붕괴가 아닌 둔화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금리가 마이너스대에 더 깊이 진입할수록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높습니다. 은행이익이 악화되면서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오히려 반전되는 이른바 “리버설 레이트(reversal rate)”의 문제도 있습니다. 마이너스 금리는 연금, 보험사, 기금 등의 자산-부채 구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연금 수령액 감소 또는 대출조건 강화의 가능성은 수요를 더욱 위축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이너스 금리가 과도한 위험 감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증시 급등과 채권금리 급락은 사이클을 연장에 일조했습니다. 마이너스 금리 채권을 매수하는 투자자 중 일부는 보다 높은 가격 또는 보다 높은 마이너스 금리에 채권을 살 사람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베팅합니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가 이처럼 실질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켰다 하더라도 자산 밸류에이션의 기초적인 이론과 화폐의 시간가치라는 근본적인 원칙에 영구적인 영향을 끼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 블랙-숄즈 옵션가격모형, 배당할인모형 모두 할인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 사실상 모형이 깨져버립니다.
일반적으로 할인율은 수익률(r)에서 수익의 성장률(g)을 차감한 값(r-g)으로 산정합니다. 그 차이가 작으면 매우 높은 자산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그 차이가 마이너스가 될 경우 모델 자체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으며 이를 대체할 만한 이론도 별로 없습니다.
결국 애널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알고리즘을 다시 손볼 수밖에 없고, 전통적인 가치평가와 목표주가의 기준을 잃은 투자자들은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투자 결정을 내릴 때마다 어렸을 적 수학 선생님이 처음으로 수직선을 왼쪽으로 그렸을 때가 떠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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